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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발성코치에게 도움을 받았던 대통령2019-02-13 17:01:22
작성자 Level 10

<케네디의 10가지 교훈>

다음은 JFK에게서 배울 수 있는 10가지 교훈이다.

 

 

교훈1. 강력한 비전을 만들어라.

 

1960년대 '베이비붐' 세대들은 10대였다. 취임사에서 케네디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트럼펫이 다시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언제나 '소망 중에 기뻐하고 환난 중에 견디며' 끊임없이 계속되는 지구전, 즉 독재정치, 빈곤, 질병, 그리고 전쟁 자체라는 인류 공동의 적에 항거하는 싸움을 이겨낼 짐을 지라는 부름입니다. 과연 우리는 이러한 적과 맞서 남과 북, 동과 서, 전 세계가 대동맹을 맺음으로써 모든 인류의 보다 풍요로운 삶을 보장할 수는 없을까요? 그 역사적인 과업에 참여하지 않겠습니까?" 그는 젊은 미국인들이 현실에 참여하고 스스로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했다.

 

 

교훈2. 역경은 미소로 대처하라.

 

케네디는 태어나면서부터 몸이 허약했고 PT-109 사고와 스포츠 활동 중 당한 사고로 건강이 더욱 악화됐다. 또한 그는 성홍열을 앓다가 유아기 때에 거의 죽을 뻔했으며 10대 때에는 백혈병으로 오진 받기도 했으며, 고통스런 코르티손 치료로만 통제할 수 있는 에디슨병과 알레르기로 고생했으며 한쪽 귀는 가벼운 난청이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몸이 약했기에 케네디는 자기연민에 빠져 한구석에 앉아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미소와 농담으로 자신의 병을 극복했다. 이에따라 케네디는 정치생활 중 맞는 좌절들에 대처할 수 있는 자질을 갖게 됐다.

 

 

교훈3. 군중을 뒤쫓지 마라.

 

케네디는 언제나 '만인의 사람'으로 보여지지 않게 경계하며 소신 있는 인생경로를 설정했다. 젊은 시절을 유럽에서 보내며 아버지가 영국의 미 대사로서 연거푸 실수를 범하는 것을 지켜보았고 어린 케네디는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아버지의 고립주의를 거부하고 자신의 영웅이었던 윈스턴 처칠의 국제주의를 선호했다. 케네디와 동생 바비 케네디는 미국 노동조합 특히, 화물운송조합의 비리를 조사했다. 또한 그는 미국 재향군인회, 민주당과 국방부 최고위층에 대한 조사도 단행했다.

 

 

교훈4. 스스로 공부하라.

 

링컨, 처질, 레이건 등이 독학을 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자기학습에 대한 열정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리더십 지표 중 하나이다. 잭 케네디는 병원에 누워 있던 어린시절부터 책을 읽었다. 『Churchill's History of the Firt World War』, 『King Arthur』, 『the Knight of the Round Table』 등과 같은 역사책, 자서전, 역사소설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었다.

대통령이 되긴 전 케네디는 세계여행을 하며 베트남과 같이 미국인들이 거의 방문하지 않는 장소를 둘러보았다. 그가 본 전쟁 전후 베를린의 대조적인 모습은 세계전쟁, 특히 핵전쟁의 결과를 생생히 암시해주었다.

 

 

교훈5. 의사소통 방법을 배워라

 

케네디는 처음에는 대중연설을 잘하지 못했다. 말이 너무 빨라 청중의 반응을 살피기 위한 여유를 갖지 못했고 횡경막보다는 후두를 이용해 말했기 때문에 목청이 빨리 쉬었다. 그래서 케네디는 자신의 연설부분을 짧게 하고 질문하는 시간을 줘 이 문제를 해결했다. 케네디는 자신의 단점을 개선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고 발성 코치와 연설작가 소렌센(Sorensen)를 고용해 기억하기 쉬운 연구의 연설문을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

또한 케네디는 미디어 훈련을 받은 최초의 정치가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생방송 기자회견은 백악관의 전통이 됐다. 그는 일이나 병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 대해 우호적인 기사를 쓰는 기자들과 친분을 유지했다. 자신의 의사소통기술을 이용해 국민들이 냉전에 대한 불안을 가라앉히고 단합하고 야망을 이룰 수 있도록 자극했다.

 

 

교훈6. 위험에 지배되지 마라.

 

리더의 가장 중요한 자질 중 하나는 위험에 지배되지 않고 위험을 관리하는 능력이다. 케네디는 침착하고 자신감 있는 태도로 주변사람 및 국가들과 의사소통을 했다. 예를 들어 쿠바 미사일위기 시기(1962년)에도 침착성을 유지했고 보복조치를 단행하지 않았다. 향후 잘못된 의사소통을 방지하기 위해 케네디와 후르시초프는 백악관과 크렘린 사이에 핫라인을 만드는 것에 합의했다.

 

 

교훈7. 팀을 만들고 최고의 '지지자'를 찾아라.

 

누구도 홀로 정상에 올라설 수 없다. 리더 자리에 오르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팀을 만들어야 한다. 케네디는 일찍이 사람들과 친분을 유지하는 방법을 익혔다. 그는 유럽귀족뿐 아니라 벨보이와 택시기사에게도 동일한 태도로 다가갈 수 있었다. 그의 투지와 의도는 거부할 수 없었으며 그를 위해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에게 헌신했다. 케네디의 첫 번째 의원 캠페인 매니저가 능력이 부족했지만 동생인 바비는 케네디에게 조직화 능력을 심어주었다. 바비는 앞장서서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을 해고하고 능력과 결단력 있는 사람들을 승진시켰다. 동생은 케네디에게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됐고, 케네디는 친족 등용이라는 문제에도 불구하고 동생을 법무장관으로 임명했다. 최고의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는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충고를 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교훈8. 쇼맨십을 가미하라.

 

케네디는 대통령이 됐을 때 대통령 항공기를 오렌지-화이트-블랙으로 도색하고 측면에 'Military Air Transport Command'라는 문구를 새겼다. 새로운 시도가 이것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긴 케네디는 레이몬드라는 뛰어난 산업 디자이너를 고용했다. 레이몬드는 연한 블루와 화이트 색상과 기체에 'United States of America'라는 문구를 명시하는 디자인을 고안했다. 케네디 또한 'Air Force one'이라는 항공기의 코드 네임을 생각해냈고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교훈9. 실수로부터 학습하라.

 

쿠바 망명자 피델 케스트로를 무너뜨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미 정부의 지원을 받은 쿠바 망명자들이 피그만을 공격하게 했을 당시, 작전 실패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당시 케네디는 계획의 주체였던 행정부를 비난하지 않고, 대신에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다"라는 말을 남기며 책임을 수용했다. CIA 국장과 부국장이 모두 해고됐다. 합참은 서면으로 케네디에게 의견을 제시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그 후로 케네디는 누구의 말도 간단히 신뢰하지 않았다. 대신에 고문관과 상담을 통해 모든 옵션을 참작하게 됐다.

 

 

교훈10, 옳은 것은 과감히 행하라.

 

용기는 케네디의 인생 전반에 걸쳐 있다. 그는 풋볼과 같은 거친 운동을 즐겼으며, 빈약한 체구에도 불구하고 하버드 수영 팀에서 활동하는 용기를 지녔다. 미국이 1941년 제2차 세계대전에 참여하기 이전 케네디는 해군에 있었다. PT-109가 일본 함정과 충돌해 침몰한 이후 동료의 기운을 돋구기 위해 농담을 하곤 했다.

『용기 있는 사람들 : Profiles in Courage』이라는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책은 대중적이지 못한 대의를 옹호해 자신의 경력을 위험에 처하게 했던 한미 의원의 이야기를 일대기로 다룬 것이다.

아프리칸-아메리칸들이 시민권을 요구하며 떠들썩할 때, 케네디는 처음으로 주저했고 정책적으로 손상을 입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하지만 1963년 6월 11일 실행에 옮겼다. 케네디는 모든 미국인의 동일한 권리를 외친 최초의 대통령이었다. 그는 자신이 한 말을 번복하지 않았으며 외적 용기와 더불어 내적 용기도 지닌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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